웹 공간을 다시 사유하기

개인 홈페이지를 짓는다는 것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00년 가을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컴퓨터를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전의 일이지만 로컬 네트워크가 연결된 컴퓨터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계획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홈페이지를 만들자. 나만의 콘텐츠와 디자인 그리고 오로지 내게만 부여되는 url 주소를 가지고 웹 공간에 나의 왕국을 만들어보자. MS 오피스보다 더 쉬운 홈페이지 제작 도구인 나모 웹에디터를 설치하고 곧바로 홈페이지 제작을 시작했다. 구글링을 통해 메인 이미지를 결정하고 메뉴와 콘텐츠를 나름 구조화하였다. 마치 흰 캔버스 종이 위에 나만의 정리된 세계를 만들어가는 느낌으로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었던 것이다. 무료 호스팅 서버에 내 html 파일들을 올리고 wo.to라는 당시 유명한 url 단축 서비스로 나만의 도메인을 만들며 그 외형을 어느정도 갖추게 되었다. 주소 입력창에 나만의 주소를 타이핑하면 곧바로 나의 공간이 나온다는 사실에 나는 설레고 흥분하였다. 어디서든 인터넷만 되면 누구든 나의 공간에 접속하며 나의 콘텐츠와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아마도 내가 느낀 감동의 결은 SNS와 블로그 등의 개인화 서비스가 일반화된 지금에서는 쉽사리 전달되기 힘들 것 같다. 무한히 아득해 보이는 웹 공간에 나만의 공간을 온갖 어설픈 재료들을 가지고 하나하나 짓는 과정 그리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만족감, 경이로움은 몇 번의 동작으로 자신의 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현재의 웹 풍경 속에서는 원시적인 감정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마치 사막에 살던 고대인들이 황량한 사막 위에 주섬주섬 주변의 흙을 얼기설기 모아 자신만의 점과 면 그리고 공간을 만들며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부동산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이 살 방을 쉽게 접근하고 계약할 수 있는 지금의 편리한 방식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원시적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분투라 말하면 과장일까.

 

사막의 고대인들은 이 흙 집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을까

 

물론 웹 서비스의 진화 과정이 마치 반인간적이며 도구적 가치에 집중해 왔다고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와 인간을 마치 분리된 실체로 가정하면서 지금과 옛날이라는 시간적 분리를 통해 불분명한 원시적 동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UX(User Experience)라 대표되는 현재의 웹 공간은 그 나름의 인간성을 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웹 공간 안에서 인간이 하고자 하는 경험과 목적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미리 잘 설계된 것이 UX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유아적 동경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공간 안에서 살고 그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일상을 구축해간다. 여기서의 공간은 a Space가 아니라 a Site의 개념에 가깝다. 반드시 ‘방’의 형태를 지녀야만 하는 a Space가 아니라 무형의 네트워크 또한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 a Site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언제나 접속 가능한 상태에 놓인 우리와 웹 서비스 공간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메타포적 앎이다. 이것은 웹 공간에 접속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연결하는 지금 여기의 일상에 관한 것이며 나아가 나의 인식론, 존재론, 가치관이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가에 대한 거리두기적 물음이다. 거리두기는 시간적으로 탐색된다. 그것은 과거의 웹 공간과 지금의 웹 공간이 사용자와의 관계라는 점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물어가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분명 – 적어도 내게는 – 웹 공간이란 하나의 캔버스이자 거주 가능한 세계로써 인식되었다. 다른 웹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고 페이지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 속에서 나의 공간이 구축된다. 미리 계획된 흐름이나 주어진 선택은 없다. 기능상의 한계는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공간에 대한 주도권은 분명했다. 공간의 전체 테마와 세부사항들에 대해 언제나 자신의 선택이 필요했다. 공간을 사유해야만 했고, 시간의 흐름과 관심의 변화를 반영해야 했다. 지금처럼 나의 변화된 감정 상태를 글자 몇 줄로 코멘트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간과 내가 하나의 몸이 되어 전체와 부분을 변경해 나가야 하는 수고가 있었다. 공간은 나를 닮아야 했기에 인생의 시간을 반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식과 존재의 결합.

 

지금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것

이제는 시간화된 공간이 아니라 공간화된 시간이 남아 있다. 같은 시간이지만 전자는 개인적인 삶과 감응하여 나오는 시간이라면, 후자는 플랫폼이 설계한 기계적 시간이다. 일방적인 타임라인 속에서 나의 공간은 플랫폼의 설계자들에게 맡겨진다. 공간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상태가 지속된다. 그때 그때의 감정은 직설적으로 바로 공유될 수 있기에 속 시원한 감정이 든다. 그러나 결코 공간적으로 사유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이미지와 글을 어떻게 웹 공간에서 구성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며, 다시 그 감정을 회고하게 되는 반성의 기회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 해야 한다. 개인 홈페이지 시대에서 블로그라는 새로운 공간 언어가 나오고, 타인과의 연결성을 강조한 서비스들이 나올 때 우리는 놀라운 발전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개인 홈페이지가 지닌 관리의 어려움과 낮은 연결성이 때때로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소외를 다시금 살펴 보아야 한다. 현재의 웹 공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다른 종류의 소외를 사유해야만 한다. 눈이 떠 있는 시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도 웹 공간의 알림 서비스가 울리는 지금, 다시 말해 우리의 생애 전체가 언제나 개인화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지금 여기의 소외를 생각해야 한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