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없음. 내용은 오리무중.

살아지는대로 생각했나.

사는 일들, 결국 먹고 사는 포만감으로 어둑한 마음을 달래는 일들로 거진 2년을 지내왔다. 내 마음 속 화두는 잠시 살아지는대로 놔두고, 현실의 業업이 던지는 수만가지의 주제들(특히 브랜딩)와 목표에 매몰려 왔다. 2년 전 일을 하기 전이라면 하루하루 경험한 새로운 일들에 대해 일분 일초 미분화하여 의미의 바벨탑을 세웠겠지만, 그런 여유도 무색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살아지는대로 생각했고, 경험하는대로 살아왔다. 그만큼 지금의 일을 하기 전, 내 마음은 갸륵한 절망과 욕심으로 가득찼었다. 

그렇다고 살아지는대로 살아지진 않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사회적인 업이 나를 뒤엎은 순간에도, 지난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나의 업은 사라지지 않고 부단히 다시 성찰하도록… 머리 한 켠 꿋꿋이 버팅기고 있었다. 놀랍게도 정신 없이 살아질 수록 과거에 대한 후회는 더욱더 명료해진다. 그간의 바쁨은 과거를 잊기 위한 도피의 나빌레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기억들은 점점 선명해지는만큼 후회는 억겁으로 더욱 짙어진다. 결코 떳떳하지 않은 20대였다.

그리하여 31살. 나이를 셈하는 일은 자신의 사회적 처지를 고려하는 것 외로는 아무런 내용을 가져다주지 못하기에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선 나는 확실히 다른 수준의 인생론을 가지게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이전에는 거의 하지 못했거나 오로지 늦은 밤에만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던, 종합적 사고력이 평소에도 발휘되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디자인에 관해 생각한다. 20대에는 디자인의 개념을 분석적으로 무한히 쪼개고 근본 원리로 깊게 들어갈 수 있는 물음에 집중했다. 오직 디자인은 디자인학에서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디자인은 철학, 사회학, 제품, 서비스, 일상 등 모든 차원에서 발견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앎을 온전히 활용하게 되었고, 완전하진 않지만 나름의 종합적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종합적인 구성력은 질문의 성격을 What에서 How is it Possible로 전환시켰다. How는 대상에 관한 물음이기도 했지만, 결국 내 자신에 관한 실제적인 요청을 의미했다. 디자인이 주어진 삶의 의미망에서 어떻게 종합될 수 있는 지를 조금씩 확인했으므로, 이제는 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의무감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물론 급격히 늙은 외모를 가지게 된 것은 덤이다).

2 Comments

  • 이소진 댓글:

    무한히 쪼개는 것보다는 쪼개져 있는 것들을 합하는 것이 더 중요한게 아닌가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저에겐 개념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만, 그것을 다시 하나의 개념으로 합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일이 가능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소진 댓글:

    그리고 깡셉님은 그러한 것들을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늙어가는 외모를 덤으로 느끼기 보다, 세월이 겹겹이 쌓여있는 외모를 감사하게 느끼는 오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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