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읽기

결말에 도달하는 가장 나쁜 3가지 방식.

근래 10년간 하나의 작품이 결말에 도달하는 가장 나쁜 방식은 주로 세 가지로 압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흩뿌린 떡밥들을 조화롭게 회수치 못해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가도록 무책임하게 일임하는 ‘열린 결말’ 그리고 눈길을 끌었던 작품의 스토리 텔링이 지닌 힘이 후반을 갈수록 맥이 풀려 최후의 응급조치로 시도하게 되는 ‘반전 결말’. 마지막으로 애초에 작품이 담아 내려는 철학적 깊이는 최대한 낮추고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다는 식을 강조하며 마무리하는 ‘결말없는 결말’. 물론 이 세 가지 방식의 결말 자체가 나쁜 결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내 비판의 요지는 작품이 결말을 향해 가면서 점점 드러나는 치유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리기 위해 저 세 가지 결말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이다.

 

한 껏 잡은 분위기를 깨는 가장 좋은 방법, 주인공을 죽이자!

 

지난 노동절 연휴 기간 동안 버닝한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이하 강철)는 한 이야기의 결말을 짓는 가장 최고의 결을 지녔다. 강철은 최고의 결말이기 위한 관건은 형식적 올바름이나 창의적 실험에서 나오지 않고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올곧은 주제에 있음을 보여준다. 강철의 결말을 장식하는 주요 테제는 ‘진리 앞에 선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필연을 초월할 수 없으며 제 아무리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봐야 (강철 세계관 속 자연 섭리인) 등가교환의 법칙에 철저히 종속되어 실패를 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진리란 언제나 인간에게 죽음의 냄새를 깊게 마시게 만들며 자기 존재의 왜소함을 깨닫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강철은 진리에 맞서서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결말을 짓는다. 호문쿨루스는 진리를 모방함으로써 실패했고 그리고 주인공 에드워드는 진리를 포기함으로써 진리에 승리했다. 주인공 에드는 가장 높은 탑을 세우며 신의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착각했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을 비껴간다. 진리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진리를 포기하고 가장 인간적인 땀으로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는 것임을 에드는 안 것이다.

연금술은 인간의 영원한 토포스다

연금술의 의미는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은, 바빌론의 탑, 인간사의 영원한 토포스다. 강철 속 연금술은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고 움츠려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기를 포기함으로써 변화와 갈등 그리고 삶의 영원한 구속을 제 육체의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지혜로 인도하는 계기가 된다. 까뮈식 시지포스 신화 재현의 방식이 강철이라는 만화 텍스트에서 변주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가 창조된다. 이른바 등가교환의 법칙.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은 불필요해진다. 당연히 이 세계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만화상 신적 존재로 보이는 형상이 인간 개개인 자신의 형상을 닮은 것, 그 존재가 오직 ‘진리’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것은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다만 실천적 의지인 한에서 무의 의지가 발동한다. 에드워드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실천의 장이다.

 

 

호문쿨루스는 인간의 정동이 드러나는 양태를 극단으로 밀고간 존재들이다. 인간성의 특징들을 극단으로 밀고 간 이 존재들을 단순히 괴물일 뿐이고 인간 예찬을 위한 제의물인가. 아니다. 호문쿨루스는 만화 속에서만 가능한 돌연변이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 말년에 돈놀이를 하게 된 노인이 매일매일 어린 여자를 바꾸어 가며 성매매하는 사회, 자신의 자식은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그 아이들의 입학을 거부하는 시위를 하는 사회, 뒷돈 받은 혐의로 자진사퇴를 하는 총리에게 수고의 박수를 날리는 테크노라트들의 모습 등등 지옥불 반도에는 구석구석 악취를 내뿜으며 존재하는 수많은 호문쿨루스들이 있다. 돈의 연금술만을 절대 가치로 숭상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극단의 경제적 페르소나는 호문쿨루스의 자본주의 판본이다. 강철의 인간 예찬을 순진하게만 읽을 수 없는 이유.

 

 

강철은 일본 망가의 종말론 서사가 지닌 특유의 악행을 하지 않는다. 종말론 망가의 대표적인 악행은 책임지지 못할 떡밥들을 끊임없이 던진다는 것.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결말 장면까지도 떡밥으로 떡칠한다. 그러나 강철은 어느 네티즌의 말마따라 철저히 준비된 계산으로 만화를 미리 만들어 놓고 결과물만 딱 세상에 내놓은 것 같은 작품처럼 보인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떡밥 투척과 회수.
그리고 아포칼립스에 대한 최종보스의 욕망과 그 실패가 작품 전체 주제와 스토리 진행의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다른 종말론 망가에서는 아포칼립스가 이야기 구조에서 논리적 힘을 갖지 않고 단순히 원자폭탄과 지진 등의 경험으로 생성된 일본인의 대소멸(대문자 죽음)에 대한 가이스트가 반영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강철의 아포칼립스는 작품 전체의 주제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최종 갈등의 국면에서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논리적 순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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