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도 예술이 아니다.

다음은 건축가 정기용의 <사람, 건축, 도시>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7) 건축에 관한 한 개별적 발화(파롤parole)는 있으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언어(랑그langue)가 부재한 이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하는 근원적 질문들을 탐색하기 위함이다. (…) 즉 건축이나 도시를 바라볼 때 공간의 ‘형태’라는 시각적 대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감각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만 대하는 오류를 범한 나머지 심지어 건축을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을 구태여 학문적으로 분류하자면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 및 사회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건축을 다루는 한국의 담론이 내재하는 두 개의 시각을 여실히 짚어주는 글이다. 사실 더 과장하여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담론이든 한국 사회가 그 대상에 대해 취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라는 개념적 범주를 실체화하여 부정과 적폐의 대상으로 쉽사리 간주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건축가 정기용의 지적은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디자인계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옷이라 생각된다. 개별적 실천과 실행은 무수히 많으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쉽사리 담을 수 없는 상황, 그 반대로 공허하고 화려한 수식어는 많으나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이야기에서 발화되지 않고 외래적인 단어들만 공론장을 채우고 있는 상황.

※한국의 디자인 담론 현실에 관한 매거진 <Design> 기사

디자인도 예술이 아니다.

디자인이 예술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해결이라는 식의 지루한 정의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디자인은 현상적으로만 접근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흐름으로 이야기되는 듯 보인다. 하나는 디자인을 비즈니스의 트렌드 용어를 만들어내는 저장고로 보는 관점, 다른 하나는 디자인을 화랑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노력. 전자의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대에 가능한 것으로, 디자인 생산을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마케팅적 언어로 포장하려는 경향으로 확장되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는 조금 미묘한 구석이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디자인도 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시와 마케팅만 난무한 디자인 예술화는 대중의 소비가 끝나는 바로 그지점에서 멈추어버린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우리의 생각, 감정에 영향을 주는 숱한 디자인 오브제와 표현들이 우리네 삶을 직조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은 선택받은 소수의 상상력이 아니라 일상인의 사회적 표현이다. 디자인을 예술로 보거나 예술의 한 분야로 간주하는 것은 뒤샹에서 다시 시작한 현대 예술에 대한 오인이고, 우리의 삶을 둘러싼 디자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착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 디자인 담론, 디자인 예술화는 공허한 말,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만 자생할 것이다. 우리의 현재를 바라보지 못한 채 무한히 ‘미래’를 선언하기만 하거나, ‘과거’를 동경하기만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담론장이 채워질 것이다.

2 Comments

  • Pielo 댓글: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예술의 정의부터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입장이다보니 감평은 어렵겠지만,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글입니다.

    • kkangseb 댓글:

      감사합니다. Pielo님. 예술에 대한 정의를 거창하게 내려야만 예술과 디자인의 관계를 헤아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관계에 관해 쓴 제 비루한 글이 Pielo님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시 저로하여금 이 글에 담긴 생각들을 고민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만족합니다. 찾아와 짧게나마 감평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 대댓을 남기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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