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 거울로서 디자인

들어가며

“디자인은 끊임없이 원형들을 창조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물건들의 범주를 만들어낸다. (중략) 이 물건들은 현대 세계의 사물을 표현하는 새로운 어휘론의 밑바탕을 이룬다” – <사물의 언어>, 데얀 수직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 담론은 과거 위대한 디자이너와 현업의 훌륭한 크리에이터의 말을 인용하며, 디자인은 결코 포장의 기술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브랜드의 가치, 비즈니스 전략, 생활의 미학 등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반절은 맞고 반절은 그르다. 우리 생활에 자리 잡은 다양한 사물과 그래픽, 타이포그라피는 우리의 감성적 실천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만드는 사람, 이를 받아들이고 자기 생활로 가져가는 사람. 이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모든 개인에게 표현의 수단이자 실천의 결과가 된다. 이 점에서 디자인의 확대된 가치는 맞다. 그러나 감성적 실천은 개인의 만족감과 위안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이에 대한 관계적 설정, 집단과 사회에 대한 해석 그리고 개인을 관통하여 작동하는 역사의 관념과 이데올로기. 감성적 실천은 이러한 정치적인 바탕에서 작동하며 성장한다. 디자인의 존재론은 사회를 보여주는 어떤 풍경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을 과장하며 산더미처럼 쌓인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상자로 간주하는 것은 순진한 믿음이거나 자신을 팔기 위한 홍보일 것이다. 디자인의 확대된 가치는 그렇기에 옳지 않다.
그러나 근래에는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를 감성적 실천 – 즉 세련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놀이 – 로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서 바라본다. 이는 사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고 호사스런 미학을 통해 더 많은 판매를 낳는 마법적 도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의 방식으로 ‘디자인’을 정의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도구적 가치(다학제적 방법론, 프로젝트에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 등)로 한정하고 나면, 과장된 말과 이미지로 도색된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긍적적 역할과 실천적 활동을 이끄는 디자인에 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 글에서 다루는 데얀 수직의 <사물의 언어>는 이러한 디자인의 새로운 역할론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사물과 우리가 맺는 관계망을 탐색하고 ‘언어, 원본, 패션, 예술’ 등의 개념을 인용하며 – 과장된 디자인의 가치가 아닌 – 현재의 감성적 풍경으로써 디자인을 바라보려 한다.

<사물의 언어, The Language of Things>, 데얀 수직(2012)

텍스트 안팎으로

(8) 맥도날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장난감 유통업체가 되었고, 그 장난감들 거의 대부분은 영화와 관련된 브랜드 상품들이다.

브랜드의 포장을 벗겨내고 보면 기업이 현재 실제로 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맥도날드는 토이저러스에 필적하는 장난감 유통 회사이면서, 동시에 세계 주요 도시의 거점을 사고 파는 부동산 업체이기도 하다. 제품의 이미지, 그와 관련된 우리 생활의 모습, 이를 바탕으로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상을 제시하는 브랜드의 언어를 괄호치기 하면 자본 증식의 전략이 그대로 노출된다. 물론 이러한 증식 욕망의 체계는 기업에만 한정짓기 힘들다. 국가 조직, 공공 기관, 공기업과 같은 공적 영역의 행위자 또한 숱한 이상적인 메시지와 선한 의도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동력의 바로미터는 권력의 쟁취와 무한한 확장에 의해 가름된다는 점을 우리는 오늘자 신문의 행간을 보아도 충분히 확인한다.

(22) 얼마 전만 해도 너무나 많은 걸 약속해주는 것 같았던 물건을 그렇게 빨리 내다버릴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낭비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중략) 엘킨스의 소비자 공학에 따르면, “상품은 자동차나 안전면도날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과, 치약이나 소다 비스킷처럼 소비하는 상품의 두 부류로 나뉜다. 소비자 공학은 현재 우리가 단순히 사용만 하고 있는 종류의 상품들을 소비하는 상품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재에는 엘킨스의 바램대로 ‘소비하는’ 상품이 사물의 세계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무언가 소비하기 위한 목표가 사물과 우리의 관계를 대부분 차지한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브랜드화 된다. <지금 여기>라는 시간에서 일시적으로 다르게 해석되는 이미지와 기호(혹은 유행)이 브랜드라는 환상으로 집약된다. 브랜드가 단지 만연해 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부분적인 해석이다. 브랜드화 현상은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 사물들 즉 브랜드의 부정(Brandless)이라는 메시지조차 브랜드화 전략의 하나로 포섭한다. 브랜드는 사물의 세계 도처에 널리 있는 것을 넘어서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대체하는 문법이 된다.

 

최근 Brandless는 워드마크 표기 형식에 대하여 특허 침해 소송에 걸렸다. 소송 내용의 법적 진위를 떠나 이 사건에서 주목적인 것은 브랜드가 아님을 주장하는 상징 전략도 결국 또 하나의 브랜드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34) 그리고 디자인은 그러한 물건들의 형태를 만들고, 그 물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가장 세련된 디자이너의 역할은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아니라, 스토리텔러가 되어서 디자인이 그러한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메시지와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사물’을 다시 그린다. 무인양품의 온갖 제품들은 특정한 주의의 메시지를 표현한다. 기능적인 목적과 미학적 고려라는 디자인의 전통적인 축대는 더 이상 메시지에 앞서 있지 않다. 메시지에서 출발하여 메시지로 완결되는 무인양품의 사물은 그것과 관계 맺는 개인적인 삶의 모습을 풀어내는 매체가 된다. 이러한 한에서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이 착안되며 그 자신의 담론적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42) 한때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많이 노출하는 디자이너였으며, 자신이 디자인한 물건들 못지않게 개인적인 개성에 힘입어 경력을 쌓아온 스타르크는 놀랍게도 전혀 변한 게 없다. 효과가 입증된 일련의 장식적 수단들과 초현실적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규모의 변화, 귀여운 의인화 스타일, 그리고 일상적인 물건들에다 발음도 어려운 터무니없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넌더리나는 습관들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공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몇 년 전 스타르크는 <디자인은 죽었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디자이너의 슈퍼스타로서 자신의 도상을 완성하였다. 데얀 수직이 그리는 스타르크의 모습은 마치 현대 예술에서 앤디 워홀의 팝과 비슷하다. 가십성 메시지를 산출하기 위해, 사물이 아닌 주어진 기호의 차이에 집중하여 그 안에 무언의 뜻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게 하는 마법 혹은 공연(performance). 워홀과 스타르크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범주의 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이 상품은 예술도 디자인도 기성품도 아닌 그 무엇의 기호로 존재한다. 이것은 책 후반에 다루는 ‘패션’의 사물화된 형태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인가 공연가인가? 그가 생전 보여준 프레젠테이션 발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공연이었는가? 그리고 아이폰은 결국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46) 디자인을 바라보는 또 한 가지 관점은 스타르크가 대표하는 관점과는 상극을 이룬다. 그것은 디자인이 일종의 내적인 진실과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최근에 이 관점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디터 람스다.

진정한 의미의 ‘산업적’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로위 그리고 진실한 의미의 ‘기능적’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와 솔직한 의미의 ‘공연적’ 디자이너인 필리프 스타르크를 가로지르면서 데얀 수직은, 욕구를 생산하고 판매를 증대하는 <마케팅> 혹은 기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내적인 탐구> 아니면 우리 시대의 상징과 메시지를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가운데 어느 하나로만 디자인을 바라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디자인에 대해서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중요한 것아니라, ‘왜’ 그러한 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지를 물어야 한다 말한다. 디자인의 본질, 가치, 기능 등에 관한 질문으로 구성된 그 ‘무엇’에 매몰되면, 우리는 정녕 끝나지 않는 논쟁의 미로 속에 빠지게 된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대상과 마찬가지로, 디자인에 대해서도 디자인의 옆과 뒤 그리고 저 멀리 디자인과 관계하는 것(예술, 정치 등)도 같이 꼼꼼히 살펴보자고 데얀 수직은 역설한다 – 물론 <사물의 언어>라는 텍스트 자체가 그러한 바라보기 실천의 결과다.

 

탁월한 기업가, 세련된 수도자, 재치 넘치는 예능인.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는 개성적인 페르소나 중심으로 서술된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로위, 디터 람스, 필리프 스타르크)

 

(209) 패션은 현대의 삶에 달린 모든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패션은 고급문화와 대중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며, 패션에게 진짜 힘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것은 진지한 문제를 다룰 수 있지만, 협소한 의미의 디자인이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다.

데얀 수직은 ‘패션이 디자인일까’는 질문은 차치하고, 과연 패션이 디자인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 산업 전반에 어떠한 ‘짓’을 하였는 지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패션은 시각 문화들을 흡수하고 이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가 예술과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변화시킨다. 패션의 힘은 당대의 유행을 리드하는 차원을 넘어 유행을 위한 필요 조건들을 패션 산업 내로 가져왔다는 데 있다. 옛 그리스 로마의 신전처럼 우뚝 선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를 브랜드 쇼에 초대하고 현대 예술가와 기호적 결합을 통해 당대의 유행을 패션 산업이라는 자장에서 발견토록 만든다. 고급 문화와 셀러브리티 대중 문화에 그치지 않고, 최근 패션은 하위 문화가 생산하는 키치들까지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른 산업들도 패션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품과 가치를 전파한다. 스펙터클 사회에서 현대 패션이 걸어 온 슈퍼스타적 기질은 사물의 디자인을 다루는 수많은 행위자(Creator)에게 깊은 영감과 표준이 된다. 바로 이 점이 데얀 수직이 디자인의 사회적 풍경을 다루면서 ‘패션’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까닭이다.

 

패션은 시골 할머니의 모습까지도 자신의 언어로 만든다. 그리고 패션이 디자이너의 쇼를 통해 미래의 상징을 선취하는 것처럼, 자동차 산업도 컨셉카라는 이름 하에 미래의 욕망을 자신의 수중 아래 가져오려고 한다.

 

(306) 예술이 언어를 창조하면 디자인은 그 언어에 반응한다. 디자인 역시 예술가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시각적 언어를 창조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한 예술가의 작업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바로 질문을 던지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다. 디자이너가 비판적인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이의 손을 깨무는 일이다. 상업이 없다면 산업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반절은 공공적 비즈니스가 가능한 크라우드 경제 시스템의 존재로, 상업을 전제로 하지 않은 디자인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봄알람은 페미니즘 담론을 더 많은 이들에게 공론화하기 위해 디자인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는 단지 기존 출판사의 아름다운 표지 디자인에 필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책의 제목처럼, 그들은 이 땅의 페미니즘이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을 상상한다. 이 토양에는 ‘말과 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디자인 또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 때의 디자인은 더 많은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감성을 촉발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데 있다. 이 모든 상상력은 산업적 요청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지 않는다. 봄알람이 주는 메시지와 상상력에 동감하고 반응하는 개인들에 의해 철저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디자인이 자생할 수 있는 참조 영역으로 예전처럼 예술과 갤러리에 호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볼알람은 기존의 문법으로 해석되기 힘든 출판사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단지 서점에 놓일 책 한권이 아니다. 책의 기획, 출판의 과정, 스타일의 형성, 커뮤니케이션 등이 그들의 작품들로 전달된다. 인쇄된 책이 아니라 활동 자체를 세상에 출판하는 셈이다.

 

나가며

사물의 언어라는 제목을 가진 데얀 수직의 텍스트는, 사물들의 문법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과 관계맺는 가장 현대적인 그러나 조금은 진부한 방식을 이야기한다. 현대인에게 사물은 욕망의 대상이자 정체성의 표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삶의 거울이다. 데얀 수직에게 디자인은 사물이 사용 가치를 넘어 삶의 메시지와 이야기를 담게 만드는 매혹적인 마법이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사물의 세계에서 과학과 기술과 결코 뒤지지 않는 자신만의 어휘론을 수립하여 우리와 사물의 풍경을 주조한다. 산업의 충실한 시녀이든 그 나름의 자생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역이든 데얀 수직에게 디자인은 여전히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며 계속 질문하고 탐색해야하는 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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